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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전보총국 설치

경산여운서화전국이 대설 운영하기로 된 한성 • 부산간의 전선공사는 조약을 체결한 후 1년이 지나도록 지지부진하여 답보상태에 있었다. 이에 우리 정부는 자주적인 전선 가설을 계획하고 1887년의 새해에 접어들면서 전선기기와 물료의 구입 및 기술자의 확보 등을 속히 가설하려고 노력하였는데 다음과 같은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즉, 동년 1월 25일부터 당시 인천에 있던 독일 상사인 세창양행과 교섭하여 2월 26일에 34,150원을 기채하였는데, 이는 현금이 아닌 각종 전선료(料)구 및 기계 등 현물로 받아 들이기로 하였다. 그 동안에 정부의 영어교사였던 영국인 핼리팩스(T. E. Halifax : 해래백사)를 새로이 감로위원으로 임명하여 전첨사 현승운 등과 함께 전신선로를 재측량하도록 하였다는 점 등이다.

한편, 조선전보총국은 남로전선 가설계획을 계기로 설치되었다. 즉, 1887년 3월 1일에는 전선을 가설함에 따라 이를 전담할 관서의 창설에 관한 국왕의 윤허를 얻어 3월 13일에 조선전보총국을 창설하고 동일자로 초대총판에 홍철주를 임명하였다.
홍철주 총판은 1888년 6월 업무 개시에 앞서 스스로 「전보국 전무국기」를 선출하여 전신의 중요성과 전신 개설의 의의를 밝힘과 아울러 직원들의 중책을 역설하고 유종의 미를 거두도록 당부하였다.

조선전보총국은 정부의 공식기록에는 일반적으로 전보국으로 표기되어 있으며 여기서 「전보국기」라고 한 것으로 보아 전무국은 전신사업을 집행하는 사무실이란 뜻으로 볼 수 있다. 그 초기에는 인장 • 식자 등에 대조선전보총국이라 하여 청국측과 물의를 빚기도 했으며 흔히 남전국으로 불리었다.

윤양육로의정서 총판의 임용에 이어 3월 21일에는 총국과 각 분국의 직인을 주조하여 배포하였고 다음날에는 전보총국에서 방판(전첨사 현승운)과 주사와 위원의 임명을 상주하여 윤허를 얻었다.
조선전보총국의 창설은 우리나라의 전신사업에 있어서 실로 획기적이며 의미깊은 사실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이는 서로전선이 1885년에 가설되었으나 전적으로 화전국에 의해 관리 • 운영되었다는 사실에 비추어 볼 때 더욱 그러하다. 나아가 3월 25일에는 청국과 「중국윤양조선자설부산지한성육로전선의정합동」(이하 「윤양육로의정」이라고 약칭함)을 체결함으로써, 남로전선을 우리 정부의 전담하에서 가설할 것을 명백히 하였다.

이 조약에서 경부전선(남로전선)도 화전국의 관할하에 둔다고 하였지만 그것은 형식상의 일이고 실제로는 화전국과는 별도로 운영되는 조선전보총국 및 그 관하분국의 설치를 분명히 약정한 점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이리하여 비로소 우리 정부 주관하의 독자적인 전선 가설이 이루어지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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