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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전보총국 설치와 전신사업 개시

경인간 선로의 가설과 때를 같이하여 한성전보총국(화전국)이 설치되어 8월 l9일 대판한성전보총국 서이수는 조선 정부에 대하여 '한성 • 인천간의 전선이 개통되어 본 전보국이 이미 개설되었으므로 개국일자를 8월 20일(양력 9월 28일)로 택정하였다'고 통고하였다.

전보신편 문서한편, 통서는 다음 날인 2l일에 미 • 일 • 영 • 덕(독) 등 각국 공사관에 「전보신편」을 증정하면서 전신의 이용에 참고하도록 통고하였으며, 22일에는 전보국이 조선 정부에 대해 관보 취급상의 주의사항(관보로 취할 전보의 종류와 관보를 기탁할 때에는 반드시 통서에서 승인 날인하도록 하고 한문 원문을 전마로 번역하여 보낼 것)을 통지하였다.
하지만 한성 • 인천간에 실제로 전신업무가 시작된 것은 개국 후 수일이 지난 8월 25일의 일이었다. 이 땅에 있어서 최초의 전신인 경인선로의 개통은 참으로 뜻 깊은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다만, 그것이 이미 본 바와 같이 청국의 정치적 필요에서 그들의 차관과 기술로써 설치 운명되었다는 점이 아쉽기는 하나 조약에 명시된 바와 같이 차관의 변제와 기술부족등의 문제 때문에 그들에게 대리 경영케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은 불가피한 현실이었다.

그러나 전주와 인력의 제공, 전선의 보호 등에 필요한 비용과 소위 첩관이라 하여 전보국원의 봉급을 비롯한 막대한 액수의 운영비를 우리 정부가 부담하였고 차관도 후일 모두 갚았으니 엄연한 우리나라의 시설이었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이러한 경우는 당시 흔히 있었던 일로 일본이 정말국의 대북부전신회사에 부여한 운영권 즉, 정말전신국의 존속을 l940년 5월 말까지 허용한 사실이나, 중국이 대북부전신회사 등 외국계 회사에 해저전선 및 국내전선의 가설권을 부여하여 태평양전쟁 때까지 그들의 지배를 받았던 사실에 비하면 오히려 우리나라의 대판 형식의 운영권 위탁은 오히려 떳떳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전보국 고시문또 한가지 분명히 할 것은 한성전보총국이 개국한 8월 20일을 양력으로 환산한 9월 28일을 l960년에 전기통신기념일로 정하였는데 이에 대한 논란이 없지 않았다. 즉 위에서 본 것과 같이 실지로 경인간의 전신업무를 개시한 날이 8월 25일이 분명하므로 이 날로 정하는 편이 옳을 것이라는 주장과 또한 개국일을 기념일로 한다 하더라도 8월 l9일에 개국하였다는 기록도 있어 정확한 개국일을 알 수가 없다는 주장도 있다.

먼저 8월 l9일의 개국 주장은 통기 8월 l9일조에 「고시전보국문 본국 현국개설 유인천도한성 기경고성 한잡인 절물전래규시사」라는 기록을 근거한 것인데 보는 바와 갈이 전보국 문에 고시한 내용이 몰려드는 구경꾼을 통제하기 위한 경고문의 성질을 띤 것이지 결코 정식 개국을 알리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전보총국대판 서이수가 택정하여 우리 정부에 통고한 8월 20일을 개국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다만 개국일과 개판일 가운데 어느 것을 기념일로 삼느냐에 대하여는 체신부가 제정한 「체신의 날」이 실지 우편업무의 개시일이 아닌 우정총국의 개시일을 택한 사실에 비추어 보아도 다시 재론할 필요는 없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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