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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통신역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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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인천간 전신선 개통

「의주전선합동」조약이 체결됨에 따라 조선과 청나라 양국은 즉시 가설 준비를 서둘렀다. 조선측에서는 부담하기로 된 전간 준비와 순변 및 순병의 차정을 인천에서 한성 • 평양 • 의주에 이르는 연로각관에게 시달하고 중국측에서도 즉시 감로(전신선로측량)에 나설 예정이었다.
하지만 때마침 여름철 장마로 약간 늦어져 6월 l2일에 이르러 조약체결을 위해 조선에 왔던 진윤신 등이 기기기국위원 금학우 • 상손 등을 대동하고 한성을 출발하게 되었다. 이때 정부는 연로 각관으로 하여금 그들에 대한 차마 제공 등 영송 절차에 어김이 없도록 통첩하였다.
조선 정부의 전주 준비 역시 장마로 많은 지장을 받았으나 가장 시급히 필요로 하는 인천 • 한성간의 소요물량은 6윌 안으로 준비를 완료할 목표로 추진하였다. 7월에 들어서는 광주 • 고양 • 파주 • 풍덕 및 평안도 각읍에 연속 독촉을 내리어 공사양림을 막론하고 규격에 맞는 전주를 급히 준비 하게 하는 한편, 각읍에서 l0이 l병, 100리 l변의 기준으로 순변 • 순병을 배정하여 우선 채벌 배치된 간목을 보호하게 하였다.

한성 인천간 전신선당시 조 • 청 양국이 전신 가설의 착공일을 언제로 잡았는지는 지금 알 수 없으나 어떻든 청측은 전선가설 착공예정일 이전에 조선측의 전주 준비와 순변 • 순병의 배치가 완료되도록 거듭 독촉하였다. 이에 평안도에서는 7월 22일에 숙천부사를 전무차사로 임명하여 선천 • 의주 등지의 전주 수송 및 배치 작업을 특별히 감독하게 하였다.
이러한 노력으로 가설공사가 먼저 시작될 인천 • 한성간과 고양 • 양주 등지에서는 7윌말까지 대체로 전주의 배치와 순변 • 순병의 차정을 끝냄으로써 공사 진행에 지장이 없게 하였다.
한편, 진윤신 일행이 감로에 종사하는 동안 여창우는 본국으로 돌아가 기기 • 물료와 경비(차관)및 가설요원 등을 갖추고 7월 25일에 기선 영청호로 천진을 떠나 8월 l일에 인천에 상륙하였다.
이때 온 요원의 수는 약 l50명이었는데 그 중에는 중국인 기술자 • 사사(司事)(통신사 등 종업원) 및 학생(견습공)은 물론 미륜사( . J. M hlensteth)라는 정말인 기술자도 있었다. 서창우 일행은 항해도중 폭풍우로 몹시 시달렸지만 8월 2일에는 가설사무소를 인천에 설치하고 그 다음날부터 전주가유 • 전주 수립 • 전선 가설 등에 착수하였다.

조선 정부에서도 여창우의 전선 가설을 지원하기 위해 8월 3일에는 경기중군 강태희를 경인간의 전무위원으로 임명하고 8월 9일에는 부호군 이용직을 전무대원으로 임명하여 중국측 위원과 함께 감독, 격려케 하였다.
8월 l4일에 인천내의 가설을 끝낸 후부터는 공정이 급속히 진전되어 부평 • 양주를 거쳐 8월 l5일 경에는 양화진 즉 선유봉 아래에서 망원정 사이 즉, 지금의 양화대교 약간 북쪽의 지점 사이를 수저선으로 연결하여 l885년 8월 l9일에는 공사 준공과 더불어 개통시험을 마쳤고 마침내 8월 20일 한성전보총국 개국일에 정식 개통되었다.
당시 경인간의 통로는 시홍(영등포)을 거쳐 서강을 건너는 길과 양주를 거쳐 양화진을 건너는 두 길이 있었는데 단거리인 양화진로를 택하였다. 이 코스는 우연하게도 오늘날의 경인고속도로의 코스와 거의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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