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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사 설치와 전신개설 준비

1876년 일본과 수교조약을 체결함으로써 쇄국의 문호는 열리고 구미 각국과도 국교를 시작하지 않을 수 없었던 상황하에서 새 시대의 조류에 상응할 수 있는 행정체제로의 개편이 불가피하게 되자 조정은 1880년 12월 20일 청국의 예를 본따 총리기무아문을 설치하였다.
이 아문에는 사대•교린•군무•변정•통상•군물•기계•선함•기연•어학•전선•이용의 12사를 설치하고 외교•통상•군사•내치 등의 사무를 분장하게 하였다. 그 후 다시 주사•율례의 2사가 추가로 설치되었으며 1881년 11월 9일에는 다시 동문•군무•통상•전선•율례•감공의 6사로 개편되었다.
1882년 6월 10일에는 임오군란의 여파로 통리기무아문이 수구세력에 의하여 폐지되고 그 후 대원군의 실각으로 7월 24일 기무처가 설치되었으나 이는 정책의 심의기구에 불과한 것이었다.

우정사 설치문서 그 후 국왕의 요청으로 북양대신 이홍장이 천거한 독일인 묄렌도르프(Paul George von M llendorf : 목인덕)와 청국 관원 마건상이 초빙되어 관세와 외교문제에 대한 자문을 하게 되었는데, 그들의 진언을 참작하여 1882년 11월에 외교를 담당하는 통리아문과 내치를 담당하는 통리내무아문이 설치되었고, 다시 12월 4일에는 통리내무아문을 통리군국사무아문으로, 통리아문을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으로 개칭하라는 국왕의 전교가 내렸다.
그리하여 12월 5일에 각 아문의 관원이 임명되고 분장기구도 결정되었는데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이하 통서 혹은 외아문으로 약칭)에는 정각, 장교, 부교, 우정의 4사가 분치되고 동문학이 부설되었다. 이로써 새로운 중앙행정기구가 완비되고 의정부와 육조는 사실상 형식적인 존재에 지나지 않게 되었다.
한편, 통서에 소속된 우정사는 장차 우편•전신 등 근대식 통신제도를 실시키 위한 우리나라 최초의 체신기관으로서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장정」에 따르면 우정사는 모든 교통•통신사업을 총괄하는 기관으로 관영•민영을 막론하고 점차 이를 널리 발전 보급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그 취지를 분명히 하고 있다.
또한 전보를 역전(우편)•철로(철도)와 함께 명시한 것으로 보아 전보의 개설을 당면 목표로 하였음을 잘 알 수 있다.

초대 독판은 조영하이었으나 우정사담당협판은 누구인지 분명치 않다. 그러나 일본측과 「부산구설해저전선조관」을 협의할 때 조영하 • 김홍집 • 홍영식 등이 이에 관여하였으나 교섭이 난관에 부딪치자 l883년 l월 l2일 독판을 민영목으로 교체하고 참의였던 홍영식을 협판으로 승임시켜 동 조약에 민영목과 홍영식이 서명한 사실로 보아 홍영식이 협판 승임과 함께 우정사을 담당했던 것으로 보인다.
우정사, 즉 통서의 설치 일자는 지금까지 l2월 4일로 보고 있으나 후일 미국공사의 문의에 대한 회답에서 통서의 설치 일자는 개국 49l년(l882년) l2월 5일(양력 l883년 l월 l3일)이라는 것을 분명히 한 바 있어 앞으로는 이에 따라야 할 것이다.
어떻든 이 날은 우리나라 체신사에 신기원을 이룩한 뜻깊은 날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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